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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5 16:20

[인터뷰] <댄싱퀸>의 황정민

황정민이 다른 이유

 

그것은 같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황정민의 연기에 쉽게 동화되는 것은 때로 비겁하고, 때로 어리석으며, 때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며 사는 우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황정민을 특별한 배우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2001년 말 어느 날, 방은진 감독의 경기도 수지 집에서 송년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는 임상수 감독과 김인식 감독이 와 있었는데(아마도 이들의 방문은 방은진을 캐스팅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특히 임상수 감독의 새 영화 여주인공으로) 두 사람은 서로 헐뜯는 데 바쁜 모습이었다. 둘은 기이하게도 늘 시나리오 작업을 공동으로 한다. 지금까지도. 어쨌든 충무로에서 까칠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두 사람이다. 김인식 감독이 먼저 그랬다. “이 인간 새 영화 만든다는데, 아 글쎄 쓰레기야 쓰레기. 주부가 옆집 고등학생하고 막 섹스를 하고 말이야. 시나리오를 보는데 정말 눈 뜨고는 못 보겠더라고.” 임상수 감독이 특유의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한방 날렸다. “그래서? 그러는 너는 남자끼리 뒹구는 영화 찍었잖아!” 임상수의 말에 씩씩대던 김 감독이 내게 그랬다. “당신이 좀 보고 판단해줘. 저런 인간과는 말 못 하겠어!”

우스갯소리인 줄 알고 며칠 잊고 지내던 어느 날 김인식 감독에게서 VHS 테이프가 왔다. <로드 무비>라고 제목이 써 있었다. 늦은 오후였다. 테이프를 모니터에 넣었다. 아항, 하품이 나왔다. 일이니까. 언젠가는 봐야 하는 거니까.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담배를 하나 붙여 물었다. 그리고 10분 정도 꼼짝 못 하고 화면을 지켜봤다. 의도적으로 어둡게 음영을 깔아놓은 화면에서는 두 사람이 거친 섹스를 나누는 중이었다. 한 남자의 허리에 두 다리가 강하게 얽혀 있다. 오디오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허리를 감고 있는 다리의 굵기가 남달랐다. 그때 알았다. 저거, 저거, 남자 다리잖아! 바로 황정민과 정찬이었다. 황정민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임상수 감독의 논쟁적인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도 황정민은 거침없이 옷을 벗어 젖혔다. 속물 근성 강한, 그러나 비교적 잘나가는 변호사 역이었던 황정민은 와이프(결국 방은진에서 문소리로 바뀌었다) 아닌 젊은 여자와 혼외 정사를 즐긴다. 근데 그 섹스의 표현 수위가 엄청나게 높았다. 한국 영화가 정녕 ‘위대한 섹스의 반란’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면, 그래서 그 섹스를 통해 세상의 억압을 뚫고 나가려 하던 때가 있었다면 바로 그 중심에 황정민이 있었던 셈이다.



영화를 즐기면서 한다는 것

“그때는 뭐가 뭔지 잘 몰랐던 때예요. 마치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인데, 이 사람 저 사람 입어보라고 하니까 그걸 주워 입고 나서는 엉거주춤 서 있는 모습이랄까? 이게 영화라면,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영화 만들기라면, 나하고 영화는 안 맞겠다 싶었던 시절이었어요. 학교 때부터 연기 좀 합네,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내 안에 있는 것을 하나도 제대로 내비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자기는 모자랐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넘치게 봐줬다는 점이다. 황정민은 <로드 무비> 등으로 신인배우상을 탔으며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글쎄 말이에요. 그러니 전 더 이상했죠. 이거 뭐지? 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는데 이건 도대체 뭐지?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꼭 스타니슬랍스키의 메소드 이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영화를 한다는 것은 ‘동화(同化)’한다는 것이다. 배우는 극중 인물에 동화돼야 하고 감독은 그런 배우와 동화해야 하며(그래서 감독과 배우는 영화를 만드는 와중에 종종 연애에 빠지곤 한다) 또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관객 역시 그 작품에 동화돼야 한다.

동화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비우기 위해서는 자기를 낮춰야 한다. 전도연과 함께 출연했던 <너는 내 운명>에서 황정민은 비로소 영화를 하는 기술을 터득한 것으로 보였다. 그는 이 작품으로 남우주연상을 탄 어느 시상식 무대에서 유명한 수상 소감을 남겼다. 이른바 ‘숟가락론’이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나는 그저,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을 얹은 셈이었다. 그러니 이 영광은 모든 스태프에게 돌아가야 한다. 도연아, 고마워’라는 식의 얘기였다. 사람들은 단박에 그의 겸손함에 열광했다. 황정민은 스타가 스타연하지 않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줬다.

“그때쯤부터였을 거예요. 나 자신이 영화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즐기면서 하자는 마음이 생긴 거죠. 요즘도 그래서 후배들에게 그런 얘기를 해요. 예를 들어서 테이크가 수십 번씩 가고 그러면 다들 굉장히 힘들어하거든요. 근데 그게 꼭 배우 탓만이 아닐 때도 많잖아요. 조명이 약간 부족했다든가, 동선이 좀 차이가 났다든가 등등. 그러니까 같은 거 많이 찍는다고 힘들어하지 마라, 네가 잘못하고 있다고 주눅 들지 마라, 나중에 가장 좋은 컷이 나올 건데, 그때 만족할 걸 생각해라, 라고 말이죠. 전 요즘 현장이 즐거워요. 영화배우라는 것이 행복해요. 어리고 배곯던 시절, 아무런 조건 없이 꾸준히 연극을 했던 때 행복해 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와 난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바로 그 점이 좋아요.


한결같은 느낌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

생각해보면 그의 필모그래피는 비교적 다양한 캐릭터로 채워져 있다. <로드 무비>처럼 방황하는 청년 동성애자가 있는가 하면,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심통 난 드러머일 때도 있었고, <바람난 가족>의 바람피우는 야비한 변호사도 했었고, <검은집>의 겁 많은 보험조사원이기도 했다. <그림자 살인>에서 구한말의 수사관으로도 나왔고, <사생결단>에서 범죄자보다 더 악질인 형사 역도 해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는 영화 내내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맹인 검객이기도 했다. 아, <모비딕>도 있었다. 아마도 황정민만큼 사회부에서 잔뼈가 굵은 중견 기자 역이 어울리는 배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허진호 감독의,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영화 <행복>에서 황정민은 또 한 번 최고의 열연을 펼친다. 아, 황정민, 정말 연기 잘해, 라는 소리를 그 영화에서는 특히 들을 만했다. 극중 인물들은 모두 이제 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들이다. 현대 의학 쪽은 손을 놓은 상태에서 대체의학을 찾아 한 요양소를 찾은 황정민은 거기에 자신보다 일찍 와 있는 임수정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니, 사랑에 빠진 척한다. 그가 사랑한 것은 결국 자신의 병든 육체와 정신이었다. 그래서 그 고통을 덜 목적으로 여자와 함께하는 삶을 택했을 뿐이다. 결국 황정민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뚜렷한 이유도, 명분도 없이 남자는 여자를 지겨워하고, 멀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여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한 공중화장실에서 황정민은 거울을 마주하고 선다. 그리고 갑자기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을 향해 침을 뱉는다. 나쁜 놈. 그는 자신이 나쁜 놈이고 개새끼이며 세상 끝까지 가더라도 결국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어찌어찌 여자를 찾아 다시 요양소로 가고, 이미 여자는 자신을 그리워하고 용서하다 쓸쓸히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소식을 듣고 담벼락 한쪽에서 황정민은 꺼이꺼이 목을 놓는다. <행복>은 우리가 행복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찾게 되는 신기루 같은 존재이며 행복한 순간에는 결코 그 행복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인간이 얼마나 우매한 관념의 똥 덩어리 같은 존재들인지 얘기하는 작품이었다. 황정민은 바로 그 너절하고 지리멸렬한 존재감을 100% 표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이 황정민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한결같다는 것이다.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고 다양한 배역을 맡으면서도 그는 우리가 우리의 마음속 한쪽에 갖고 있을 법한 순수함과 위악과 그 양면성과, 그리고 그 중간 지대를 모두 대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황정민은 늘 보는 사람들마다 저건 바로 나야, 하는 대상이 된다. 어떤 영화에서든 그는 항상 나와 같이 이 지긋지긋하고 징그러운 세상살이를 더불어 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황정민만큼은 내가 가난한 직업을 택하든,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는 일을 택하든 같이 담배 한 대 물고, 연기를 푸욱 내뿜으며 ‘에이, 괜찮아 괜찮아. 다 그런 거야’라고 위로해줄 인물처럼 느껴진다. 

“사람들 모두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사람들을 살짝 정의롭지 못하게도 만들고, 거짓과 타협하게도 만들잖아요. 매일 바르게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반성하며 살게 되기도 하고요. 많은 분이 저를 사랑해주시는 게 그런 것 때문이 아닐까요. 다른 이들처럼 저 역시 사회적 정의고 뭐고 잘 알면서도, 매번 실수가 많고, 어쩔 수 없이 혼란을 겪는 사람 같다는 느낌 때문일 거에요. 어떻게 사람이 안 그럴 수 있겠어요. 세상을 살면서.”

황정민은 영웅 캐릭터가 아니다. 그렇다고 반영웅의 이미지도 아니다. 그는 그 중간쯤 회색지대에서 많은 사람들과 쭈뼛쭈뼛 서 있는 사람 같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부당거래>에서 부하들에게는 조직의 원칙을 내세우며 늘 센 척하고 살지만, 결국 비리 검사 앞에서 바지를 발목까지 내리고 무릎을 꿇는 형사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큰 격랑이 일 것인가. 우리 역시 그 같은 비바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다.


댄싱 퀸 아내를 둔 시장이 된다는 것

황정민의 신작 <댄싱퀸>은 겉보기에는 매우 말랑말랑한 작품이다. 어찌어찌하다 대학 운동권의 기수가 됐다가, 그래서 변호사가 돼도 떠밀려서 인권 문제를 맡느라 꾀죄죄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이 또 어찌어찌하다가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게 되고(그때 황정민의 고백 역시 이거다. “에이 씨 누가 날 떼밀었다 아이가?”) 그래서 결국 한 정당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가게 된다는 얘기다. 거기까지는 밋밋한데, 이 사람의 마누라가 한때 신촌의 마돈나로 불리던 춤꾼이라는 점이 얘기를 뒤집히게 만든다. 전직 신촌의 마돈나 마누라는 뒤늦게 댄스 가수가 되겠다며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고 또 거기서 뽑히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인다. 오, 재밌겠다고? 물론 재미있다. 그러나 영화는 시종일관 진부한 상업영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근데 왜 황정민이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 엄정화 때문에? 황정민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엄정화와 연기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아니다.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이 영화를 황정민이 선택한 이유는 정치와 쇼의 기묘한 상관관계를 연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상 한국에서 정치란, 쇼와 같다. 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영화에서 남자가 하려는 것은, 그렇게나 무시하려 했던 와이프의 일과 다르지 않다. 또 다른 한편으로 볼 때 한국에서 쇼를 한다는 건, 진심의 의미를 담으면 정치를 뛰어 넘는 역할을 한다. 영화 후반부에 남자가 아내의 일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진정성을 깨닫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와 쇼가 갖는 이분법적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분법적이지 않은 그 무엇에 대해 얘기하려는 것이 이 <댄싱퀸>이고, 황정민은 바로 그 점을 읽어 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을 것이다. 황정민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인터뷰를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요?”

일상에서는 그가 댄싱 퀸이고 아내가 시장이다. 그는 종종 자신의 진짜 아내 얘기를 한다. 다른 배우들보다는 그 빈도가 많다. 그의 엄격한 관리자는 아내다. <댄싱퀸>을 보고 나서 지금껏 한 연기 중에서 제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그 얘기를 하는 황정민도 그랬고, 나도 그랬는데, 그의 부인의 평가에는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황정민에게는 늘 모든 작품이 베스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번 <댄싱퀸>보다 더 힘든 작품도 지금껏 많이 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내의 평가는 좀 남다른 데가 있다. 그럼에도 늘 아내의 평가를 제일 앞세우는 것은, 그녀를 영화적 동지이자 동반자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말 심야 시간대에 멀티플렉스에 부인과 영화를 보러 나온 황정민을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촬영이 없을 때면 마치 부족한 곡기를 채우듯 극장을 순회하며 영화를 본다.

“<댄싱퀸> 개봉할 때 대니얼 크레이그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개봉한다면서요? 아이 씨. 데이비드 핀처 영화가 얼마나 대단한데. 왜 하필 그 영화가 개봉되는지 불안해 죽겠네요.”
서로 관객층이 달라서 괜찮을 거라고 얘기한다. 얘기가 나온 김에 황정민의 입에서는 영화 얘기가 줄을 잇는다. 갑자기 데이비드 린치 얘기까지 나온다. “린치 영화 중에 <스트레이트 스토리> 있잖아요. 좀 된 영화요. 그 영화에는 딱 두 명 나와요. 70대 노인과 장애인 딸이요. 근데 두 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눈을 뗄 수가 없어요. 와아, 영화가 그런 거예요. 아주 작고 단순한 이야기로도 사람 가슴에 팍 꽂히게 하는 거. 늘 그런 영화를 보고, 저런 영화를 해야 한다고 살아요.”
공교롭게도 황정민과 10년 만에 자리를 했다. <로드 무비>에서 이번 <댄싱퀸>까지 황정민은 스타의 계단을 차곡차곡 걸으며 올라왔다. <신세계>처럼 앞으로 찍어야 할 영화가 뒤에 줄을 잇고 있으며 <한반도>처럼 막바지 촬영 중인 블록버스터급 TV 드라마도 있다. 10년 후에 황정민은 과연 어떻게 돼 있을까.

“제가 어떤 배우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글쎄? 폴 뉴먼 같은 배우?” “에이, 꿈이 너무 큰 거 아녜요, 그거?” 꼭 그런 건 아니다. 지금대로라면 황정민은 한국의 폴 뉴먼 같은 배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