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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0 16:58

[리뷰] 흥미롭지만, 미완성의 영화 모비딕

 

흥미롭지만, 미완성의 영화 모비딕

 

민완기자 이방우(황정민)는 이제 막다른 길에 몰린 참이다. 비밀조직 ‘모비딕’의 또 다른 테러 일정을 알아내긴 했지만 일개 기자가 대형 참사를 막아내기란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은, 이렇게 저렇게 다치고 깨진 몸 마냥 만신창이다. 몇 년 차 되지 않은 ‘똑똑이’ 후배 여기자가 차를 사이에 두고 조수석 바깥에 서있는 이방우에게 꽥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어쩌라구요 선배?!” 그래서 둘은 결심한다. 대형 오보를 내기로. 내일자 모든 기사를 킬(kill)시키고 자신들의 테러 예측 기사를 내기로. 그럴려면 반드시 해내야 할 것이 있다. 윤전기를 멈춰야 한다. 판을 새로 갈아야 한다. 이방우는 연신 담배를 피워 가며 내일자 톱 기사를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드라마틱 하긴 하지만 <모비딕>이 결말로 가는 이 과정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시나리오 상으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이게 상업영화가 되긴 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뭔가 영웅적이면서도 해피 엔딩스러운 장면이 돼야 하는데, 그리고 그럴려면 상당히 작위적인 설정으로 밀어 붙여야 할텐데, 그게 과연 말이 될까 싶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비딕>의 제작진은 다소 말이 안되더라도 대중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그래서 극장 문을 나설 때 역시 세상엔 숨은 영웅들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떠나게 만들자고 입장을 정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부분이 영화 <모비딕>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신문사 혹은 언론사의 구조나 생리상 평기자가 윤전기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건 평기자 위의 데스크 곧 부장도 할 수 없는 노릇이고 심지어 편집국장도 맘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윤전기를 멈출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 곧 신문사 사장이다. 기사를 바꾸는 것, 곧 판갈이를 하는 것도 기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국장은 알고 있어야 한다. 사장과 싸우고, 그래서 사장을 속여서 윤전기를 멈추게 하더라도 그건 기자나 데스크가 아니라 국장이 해야 하는 게 지금의 신문사 생리상 맞는 일이다. 영화 <모비딕>은 그 지점에서 지나치게 나이브하게 너무 앞으로 나갔다. 기자들이 봤을 때 <모비딕>은 디테일이 완벽하지 못한 게 흠이다. 한국영화의 상당수는 전문가 집단을 그릴 때 완벽한 디테일을 구사하지 못한다.


꼭 비교할 의도는 아니지만, 할리우드 영화는 언론사를 그리는데 있어 탁월한 스케치를 자랑한다. 알란 J. 파큘라 감독의 <대통령의 사람들>에서 칼 번스타인과 밥 우즈워드 역을 맡은 더스틴 호프만이나 로버트 레드포드 말고도 편집국장과 각종 데스크를 맡고 있는 조연들의 연기는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다. 이들이 어느 날 편집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간부기자들 같다. 론 하워드 감독의 재미있는 영화 <페이퍼>도 그렇다. 어느 날 편집국장인 로버트 듀발이 엄청나게 두꺼운 백과사전을 들고 나와서는 편집국 한복판에서 ‘데드 라인이란…’이라며 기자들에게 마감을 종용하는 모습은 그냥 코믹한 모습만이 아니다. 실제로 편집국 마감 풍경이 그렇다. 그래서 그 장면은 재미있기 보다는 앗, 저쪽 기자들도 저렇게 사는구나 해서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진다. 조지 클루니가 직접 연출을 한 <굿 나잇 앤 굿 럭>도 할리우드가 언론사의 내부 풍경을 그린 작품 가운데 수작으로 뽑힌다. 여기서 수작이라고 하는 것은, 다시 한번 강조해서 좀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디테일이 훌륭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화에서 데이빗 스트라단은 진짜 에드워드 머로우같다. 그뿐인가. 같은 보도국에서 일하는 뉴스PD 역의 조지 클루니 역시 한때 방송국에서 일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다.


하기사, 대중영화를 논하는데 있어 지나치게 전문가 집단의 묘사를 100% 정확하게 요구하기란, 당최 무리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일 수 있다. 대중이 꼭 전문가들의 삶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는가,라는 점에서 모두가 다 예스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모비딕>은 좀더 비극적이고 비장한 맛을 두텁게 가져가는 게 좋을 뻔 했다. 예를 들어 주인공 이방우처럼 기자가 세상을 살리게 해서는 리얼리티가 떨어져 보인다. 오히려 기자는 져야 한다. 모든 비리와 비밀, 음모를 파헤쳤다 한들 그것을 이길 방도가 없음을 알고 좌절하는 모습인 게 맞다. 때로는 그 어마어마한 음모집단에 타협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상황을 받아들이게 하는 게 더 진실에 가까운 모습이다. 우리는 지금의 참혹하고 잔인한 자본주의 사회 구조를 이겨낼 수가 없다. 우리는 그 일원이 된지 오래며, 그래서 우리 일상의 삶은 어쩌면 꼭둑각시 인형처럼 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줄을 움직이는 실체를 끝내 알아내기 어렵다.
그 같은 논쟁점을 제외하고 <모비딕>은 흥미로움에 흥미로움을 더하는 영화다. 일단 복잡한 음모이론의 퍼즐을 풀어 나가는데 있어 예전의 한국영화가 보여주지 못했던 성취점을 따내고 있다. 이방우-손진기(김상호)-여기자(김민희), 3인 특별취재팀이 음모에 접근하는 과정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어리버리해 보이는 손진기가 사실은 자기만의 딥 쓰로트(deep throt. 내부 고발자)를 운영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영화의 초기 사건인 발암교 폭발 사고의 용의자 세명을 알아내는 것도 손진기다. 여기에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기무사 요원들에게 좇기는 윤혁(진구)의 에피소드도 서스펜스의 긴장도를 높인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1994년, 한 기무사 요원의 양심선언 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사회는 군부독재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군부 기득권층, 절대 보수층들이 세상을 움직이려 할 때였다. 정치인을 포함해 다수의 민간인들이 이들의 사찰 대상이 됐으며 음해의 목표가 됐다. 기무사 요원의 양심선언은 그 당시 막대한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어찌 보면 지금의 세상이 조금이나마 좋아지고 발전하게 된 것은 과거 수십년 동안 켠켠이 쌓아져 온 몇몇 의인들의 노력 덕이다. <모비딕>은 바로 그 점을 잊지 않고 있는 영화다.


1994년이 시대 배경인 탓에 주인공들을 움직이게 하는 디지털 기제는 기껏해야 비퍼, 곧 삐삐다. 특별취재팀 3인조의 대다수 작업은 거의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신문들 대다수가 여전히 한자를 가미한 세로쓰기로 판을 짜고 기자들 대부분이 200자 원고지로 기사를 꾹꾹 눌러 쓰던 시기였다. 데스크들은 심지어 원고지를 세로쓰기로 하던 때였는데 영화는 일부러 데스크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세로로 쓴 원고를 보여주기도 한다. 1994년이라는 시대의 풍경을 잡아내는데 있어 그 디테일은 충분히 좋았다는 의미다. 영화를 만들기 위한 사전 취재과정이 비교적 철저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대적 공기를 포착해 내는 데는 완벽하게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왜 1994년으로 돌아갔는지, 우리에게 약 15년의 세월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변했고, 또 어떤 점이 아직도 답보상태인지 그 정치사회적 역학 관계를 추론케 하지 않는다. 최소한 2010년대에조차 벌어진 총리실 산하 모 직속기구의 사찰행위가 이 영화에서 그려진 시대와 연결선상에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모비딕>은 단순히 음모이론에 대한 흥미로운 대중영화인가, 아니면 지금의 사회에서조차 횡행하고 있는 불법정치와 그 억압기제에 대해 대중들의 눈을 뜨게 하려는 의도의 영화인가. 그래서 우리는 희망적인가, 아니면 여전히 절망적인가. <모비딕>은 이 지점에서 다분히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모비딕>은 좀더 강하게 밀어 붙여야 했다. 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이 사회에 대해 더 절망시키게 했어야 했다. 오히려 바로 그 지점에서 영화의 상업적 성공도 더 크게 가져 올 수 있었을 것이다.
<모비딕>은 흥미롭지만, 미완성의 영화다. 이런 류의 장르를 완성본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기술적 진보의 측면은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할 만 하다. 그건 한국영화에 있어 분명 또 다른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제는 이정표를 세우는 것 말고도 사람들이 그 이정표를 보고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모비딕>이 최후의 지점에서 한 고개를 마저 넘지 못했다는 느낌을 주는 건 그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