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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5 15:52

[인터뷰]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

세상의 곁에서 걷다(1) : 정지영이 돌아왔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관객 수가 3백만을 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두고 옳으네 그르네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가운데 영화를 시작했던 배우와 감독은 관심과 지지, 비난과 논란, 영화 속 얘기, 영화 밖 얘기까지 그저 모든 게 반가운 모양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은 세상의 곁에서 걷기를 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정지영이 돌아왔다


정지영 감독에 대해서 얘기하기 위해서는 정지영 감독과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시작해야 한다. 몇 년 전 한 영화기획자가 우리 영화계의 파워맨이라는 강우석 감독을 찾았다. 마침 동석해서 듣게된 둘의 대화 내용은 이랬다. “있잖아요, 여야를 넘어 통합의 리더십을 갖춘 대통령 후보가 나온 거예요. 일부 보수 강경파에서는 이 사람 제거 작전에 들어가는데, 거기엔 물리적 폭력도 들어가 있어요. 이 사람, 이런저런 위기를 겪게 되고 그때마다 고비를 잘 넘겨요. 근데 문제는 이 사람에게 숨겨놓은 여자가 있다는 거예요. 두 남녀 사이에 순애보가 펼쳐지는 거죠. 이걸요, 한 12부작 드라마로 만들면 어떨까요?” 사무실에는 오전 햇살이 들어 모두 부신 눈 때문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얘기에 성질 급한 강우석 감독, 조금씩 짜증이 나는 모양이고. 강 감독은 아니나 다를까 중간에 말을 자르고 들어간다. “아니 근데, 그게 왜 갑자기 내 영화 제목을 끌고 들어가냐고?” 강 감독 앞에 있는 남자가 이때다 싶은 표정으로 날름 답한다. “네 네, 그러니까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가 1990년대 초반에 나온, 보기 드문 정치 스릴러잖아요. 무엇보다 대선 얘기고. 제목이 아주 멋있잖아요!” 강 감독이 보이지 않게 흥, 하며 코웃음을 친다. “아 됐고, 연출을 누구한테 맡기고 싶다고?” “딱 맞는분 있어요. 정지영 감독님이요, 정지영 감독. 심지어 거기 카메오로 출연까지 하셨잖아요!”


“(이때 강 감독,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너, 아주 미쳤구나 미쳤어. 봉준호 <괴물2>도 청계천에서 괴물 나온다는 설정 때문에 아예 영화가 엎어졌잖아. 얘가 세상이 돌아가는 걸 몰라도 한참 모르네. 청계천만 건드려도 아웃되는 세상이야. 야! 지영이 형 괴롭힐 짓 좀 하지 마! 얼른 나가!” (이명박 정부 초기에 정지영 감독은 문성근, 명계남과 함께 문화계 3대 공적으로 기피 대상이었다. 이 둘의 대화는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9년쯤 나눈 것이다.)


정지영 감독이 <부러진 화살>을 만들기까지 연출을 쉰 게 13년이나 됐지만 이상하게도 다들 정말 그렇게나 됐느냐며 화들짝 놀란다. 그러곤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는 안 됐을걸?”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됐다. 그걸 매번 까먹는 건, 정지영 감독을 두고 여기저기서 늘 이런저런 기획이 나왔다가 엎어지고, 다시 기획됐다가 엎어지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1997년 <블랙잭>과 1998년 <까>를 만든 후 정지영 감독은 작가들이 붓을 꺾듯, 연출을 접었다. 두 작품 모두 흥행에 참패했다. 충무로 식으로 말하자면 ‘전액 손실’이 났다. <블랙잭>은 지금은 사라진 대형 단관 극장 단성사에서 상영됐다. 단성사 정문에서 윗길, 그러니까 창경궁 방향으로 좀 올라가다 보면 이 지역에서 제일 맛있다는 중국집이 나온다. 단성사에서 영화를 보면 꼭 그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그날도 그랬다. 마침 정지영 감독이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 둘과 앉아 있었다. 소주와 군만두가 앞에 놓여 있던 기억이 난다. 거기 군만두가 특히 맛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표정이 워낙 시무룩했다. 아마도 앞에 앉은 두 남자는 충무로 투자자들이었을 것이다. 정지영 감독의 얼굴엔 지금 내 가슴속에서 비수가 돋고 있어,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대중에게 느끼는 분노였을까. 이래라저래라 하는, 돈 좀 있네 하는 투자자들이 짜증 났을까. 아니면 IMF 사태를 향해 소용돌이처럼 휩쓸려 들어가는 세상에 대한 울분이었을까. 정 감독은 거기서 좀 쉬어야 했다. 그런데 이듬해 정지영 감독은 오히려 전작과 1백80도 다른, 아주 생경한 작품을 들고 나왔다. 새 영화 <까>의 시사회에서 첫 장면을 두고 일부 제작자들이 수군거렸다. “이 사람 가도 너무가네. 이거 이래 가지고 상업영화 같이 하겠어?” 정지영 감독과 충무로의 ‘돈’들은 그렇게 서로 등을 돌렸다.


“근데 그 시기가 스크린 쿼터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던 때잖아. 안성기, 문성근, 박중훈, 강수연 등등이 검은색 옷 입고 가두시위 할 때였지. 임권택 감독이 삭발을 하고, 그걸 보면서 마이크 잡은 명계남이 목이 쉬어라 두 시간을 연설 세상의 곁에서 걷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관객 수가 3백만을 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두고 옳으네 그르네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하며 울고 그럴 때였지. 바빴어. 할 일이 아주 많았어. 시간이 후딱후딱 갔지. 그러다 2000년대가 온 거지.”


2000년대가 왔어도 정지영 감독은 할 일이 많았다. 더 많아졌다. 이상하게도 세상은 좀 더 자유로워졌는데, 지금보다도 좀 더 좋았는데 정지영 감독은 할 일이 자꾸 많아졌다. 영화 현장보다는 사회에서. 정지영 감독의 쓰임새는 자꾸 그쪽으로 몰리는 듯했다. 여기서 스톱. 정지영 감독의 지난 40년 가까운 영화 인생을 풀어놓기에는 지면이 너무 부족하다. 과거 얘기보다는 현재 얘기가 낫다. 그게 더 재미있다. 정지영 감독은 지금 <부러진 화살>로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지만 이번에 만든 작품은 이 한 편만이 아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마치 한을 풀듯이, 그동안 쌓아만 놓고 있었던 에너지를 한꺼번에 뿜어내듯이, 영화 세 편을 연달아 찍었다. <아리아리 한국영화>라는 다큐멘터리가 있고, 이두용, 이장호 감독 등과 함께 <산책>이라는 옴니버스영화도 찍었다. “근데 이런게 재밌는 거야. 세 편이 내용적으로 다 연결돼 있거든. <아리아리 한국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부러진 화살> 크랭크인하는 모습이야. <산책>에서 내가 맡은 부분은 몇 년 전 죽은 기자 후배 얘긴데, 그 친구가 살아 있다는 가정하에 나를 인터뷰하는 내용이야. 바로 <부러진 화살>로. 어때? 재밌지 않아? 두 영화 다 재밌어. 의미도 있고.” 재미 면에서는 <부러진 화살>도 못지않다. 이 영화가 잘된 것은,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겠지만 일단 무엇보다 대중의 눈높이에서 재판 과정의 복잡하고 지루한 얘기들을 빼고 드라마를 재미있게 엮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되고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했는데, 어? 다들 재밌다는 거야. 뭐 다른 얘기들을 할 수도 있잖아.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건드렸다는 둥 그런 거 말이야. 근데 다들 첫 마디가 대개 재밌대. 그때 비로소 그런 생각을 했지. 야, 이거 되겠는데, 하고 말야.”


그런데도 <부러진 화살>이 개봉하기 한 달 전쯤 나는 정지영 감독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감독님, 설날 연휴에만 한국 영화가 다섯 편이에요. 여기에 붙는 건 조금 불안하지 않으세요? 2주 정도 뒤로 가는 게 낫지 않으시겠어요?” 이런저런 세상사를 겪은 사람들은 화를 잘 내지 않는다. 정 감독도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이때만큼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내 영화는 달라. 다른 영화와 관객층이 달라. 그래서 이때 개봉하는 게 맞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들 마.”정 감독이 옳았다. 그 시기를 피해 2주 뒤로 개봉을 미뤘던 <파파>는 결국 흥행에 실패했다. 경륜이 있는 만큼 배급 시기를 가늠하는 감각도 뛰어났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노회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하는 것이다.


<부러진 화살>은 일부에서 이른바 ‘석궁 테러 사건’의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지영 감독은 ‘왜곡’이라는 비판에 대해 ‘굴절’이라는 용어로 반박했다. 사람들이 자꾸 엉뚱한 논의로 치닫고 있는데, <부러진 화살>에 대한 올바른 판단 여부는 ‘사실’을 똑바로 기록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에 어떠한 정치적 태도를 갖고 있느냐에서 비롯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석궁 테러를 일으킨 김명호씨에 대해, 변호사인 박훈을 통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 저 또라이 새끼.” 영화가 김명호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영화는 스크린에서 상영이 되는 순간, 감독의 손에서 떠나는 법이다. 이 영화를 두고 꽤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관객이 고민하고 판단할 문제다.


정지영 감독에게 정말 물어보고 싶었던 얘기. 하지만 뻔한 얘기. 요즘 기분이 어떠세요 감독님? “나 같은 60대 감독들이 전화해서 축하한다고 할 때가 제일 좋아. 당신이 그랬잖아. 이 영화가 잘돼서 나이 먹은 감독들이 작품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됐다고. 투자자들이 이제 우리 같은 사람들의 영화 감각을 믿을 수 있을 거라고. 좋았어. 바로 그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


그럼 이제 뭐 하실 거예요 감독님? “나 바빠. 얘기했잖아. 시간이 후딱후딱 간다고. 나 시나리오 써야 돼. 빨리빨리 다음 작품 만들어야 해. 그러니 이제 정말 귀찮게 좀 하지 마. 나 간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