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곁에서 걷다(2) : 문성근은 떠나지 않는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관객 수가 3백만을 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두고 옳으네 그르네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가운데 영화를 시작했던 배우와 감독은 관심과 지지, 비난과 논란, 영화 속 얘기, 영화 밖 얘기까지 그저 모든 게 반가운 모양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은 세상의 곁에서 걷기를 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성근은 떠나지 않는다
10년 전 쯤 문성근은 말했다. 술을 약간 마셨던가? “안 해. 난 안 할 거야. 영화할 거야. 나 배우야. 배우라고.” 그래서 대뜸 물었다. 그때 얘기는 어떻게 된 거예요? “글쎄 말이야.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네. 역사의 격랑이 자꾸 나를 이쪽으로 몰고 왔어.” 무슨 무슨 소명 의식에 대해 얘기할 줄 알았다. 조국이 나를 불렀다, 따위의. 문성근이 좋은 건, 늘 이렇게 솔직하다는 것이다. 격식 같은 것을 따지지 않는다. 그는 그래서 아직 정치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천생 배우다
인터뷰를 하자고 했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을 때, 시간 많이 걸리면 나 못 해, 했다. 30분이어도 돼? 여의도에서 만나도 돼? 그러면 만나, 라고 했다. 윽. 30분이라(결국 얘기는 한참 더 길어졌다). 사진만 찍고 말겠군. 여의도의 한 사무실을 간신히 빌렸고, 거기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한창 촬영 중일 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촬영 장소까지 가는 동안 그래도 이 사람, 요즘 정치를 한다 했으니 말끔한 수트 차림일 거라고 생각했다. 넥타이를 매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웬걸. 그는 떡하니 등산복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실제로 등산화를 신고 있기도 했고. 그것 참. 포토그래퍼 선배가 좀 난감하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저러고 여의도 정치 바닥을 다녀도 될까? 나중에 확인해보니까 그는 이날 공천 심사위원들 앞에서 면접을 봤다. 심사위원 중에 한 명이 왜 오늘 그렇게 입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나도 그걸 물어보고 싶던 참이다. 그의 답변이 재미있었다. “전투복이에요.” 하긴 요즘 정치, 일종의 전투다.
가능하면 정치 얘기를 안 하려고 했다. 오늘은 <부러진 화살> 3백만 돌파 기념 인터뷰니까. <부러진 화살> 얘기만 하고, 영화 얘기만 해야지, 했다. 정치에 한발 한발 가깝게 다가설수록 이상하게도 그는 악역만을 골라 했는데 바로 그런 얘기 같은 것. 비루하고 지리멸렬한 지식인 역도 그의 몫이었다. <실종>의 연쇄살인마, <옥희의 영화>의 이중인격 교수, 그리고 이번 <부러진 화살>의 보수 골통 판사. 근데 이 역할들, 그에게 착착 달라붙는다.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사람들마다 자기 안의 악마가 있는 거잖아. 그걸 인정하면 돼. 그러면 그런 역할에 거부감 같은 게 없어지지. 물론 <실종> 같은 거 할 때는 좀 그랬지. 촬영장을 빠져나오면 속이 다 후련해지더라고. 나라고 그런 역할을 설마 즐기면서 하겠어? 이번 영화에서 판사 역? 그건 사실 쉬워. 반대편에 서 있으면 그 너머가 더 잘 보이는 법이니까.”
영화 <부러진 화살>은 사실 문성근에게서 시작됐다. 김명호씨의 책을 정지영 감독에게 읽어보라고 권했고, 이참에 영화로 한번 만들어보라고 뒤에서 민 주인공이 바로 문성근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주인공 역을 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았다. “난 조연 배우잖아, 요즘. 그래서 배우 계속 하면 아주 오래갈 거야.” 어쨌든 시간도 없었다. <부러진 화살>을 위해 간신히 3일을 낼 수 있었다. 그때 그는 전국을 돌며 무슨 ‘민란’ 같은 걸 하고 다녔다. 사람들을 모으고 이 땅의 정치 얘기를 하고 다녔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두고 몽상가라고 불렀다. 되지도 않는 일을 하고 다닌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민란 집회를 기획하고 조직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내가 배우여서 가능했다고 봐. 배우는 꿈을 꾸잖아. 상상을 하고 살잖아. 현실은 알지만 현실적이기를 거부하잖아. 힘든 일을 일부러 골라서 하고 다니잖아. 쉽게 쉽게 되는 일, 우리 같은 사람 절대 못 하잖아. 그런 거 우리는 절대 안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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