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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den Track] 무력한 매일은 이제 그만, <킥애스: 영웅의 탄생>

사람들은 왜 슈퍼 히어로에 열광하는 걸까? 물론 크리스 에반스의 완벽한 몸매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잘생긴 얼굴, 스칼렛 요한슨의 믿기지 않는 몸매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하긴 하다. 로키, 버키, 매그니토 같은 악당들은 악당이라기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넘치기도 하고. 하지만 비현실적으로 뛰어난 지적, 신체적 능력을 가진 히어로가 너무 쉽게, 혹은 적당한 시련만을 거친 후 악랄한 ‘나쁜 놈’을 처치하는 그런 이야기가 대체 뭐라고, 전 세계가 배트맨과 아이언맨에 열광하는 걸까.

믿지 못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나면 SNS에서는 그런 말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슈퍼 히어로가 있어서 저들을 구해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라고.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히어로 만화나 영화를 보며 무력한 현실로부터 도피한다, 라는 것으로 이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아주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닐 것이다. 실제로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아주 안 해본 것은 아니다. TV와 길거리에 넘치는 온갖 부당한 상황들 앞에서 ‘나’는 평범하다 못해 너무 작고 무능한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 <킥애스: 영웅의 탄생>의 주인공 데이브가 불량배에게 털린 후 “왜 현실에는 악당만 있고 히어로는 없는 걸까”라고 질문하는 장면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쏟아지는 블록버스터의 홍수 속에서도 유독 튄다. ‘간지는 나되 심하게 폭력적이지 않은’ 12세 혹은 15세 관람가의 보통 액션 영화와도 다르고, 초인적 능력이나 엄청난 재력을 가진 히어로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1997년 생 아역 배우가 주연, 심지어 액션 히어로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수위는 R등급을 가볍게 넘기며, 액션 씬들은 <스파이더맨>보다는 <킬 빌>을 떠올리게 한다. 괜히 ‘B급 히어로 영화’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맞닥뜨린 현실의 부당함 앞에서 만화책 속으로만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히어로가 되고자”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문제를 돌파하려는 데이브의 행동만큼은 ‘B급’이라고 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가 불량배들에 맞서 싸워 그들을 혼내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영화 속 현실에서 많은 이들이 데이브의 ‘그 시도’ 자체에 응원을 보냈듯이 말이다. 

물론 <킥애스>가 여기까지였더라면 이 영화를 ‘B급 히어로 영화’가 아니라 성장영화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 영화의 ‘B급다운’ 매력이 살아나는 부분은 현실 속 ‘나’의 모습이 투영된 데이브와 정말로 영화의 주인공 같은 힛걸의 세계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아내의 억울한 죽음 후 스스로와 딸을 실제 코믹스 속의 히어로에 가깝게 ‘훈련’한 ‘빅 대디’, 그리고 이것이 딱 체질인(?) 11살 여자아이 ‘힛걸’은, 현실의 부당함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도 대항할 능력까지 갖추었다는 점에서는 ‘킥애스’ 데이브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무력감을 다루고 있어 다소 무거운 감이 있는 이 영화에 오락적 즐거움을 더해주는 캐릭터들이기도 하다. 실제로 <킥애스> 개봉 후 킥애스보다 더 화제가 되었던 것은 힛걸이었고, 덕분에 속편 <킥애스2: 겁 없는 녀석들>에서는 데이브의 이야기만큼이나 힛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플롯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이 시리즈의 실질적 주인공이 힛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힛걸의 유명한 복도 액션 장면

어른 반만한 이 꼬마 아이의 무자비한 액션 씬은 ‘이렇게 어린 아이를 데리고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언제나 ‘가장 보호 받아야 할 약자’로만 여겨지던 존재가 악당들을 호탕하게 해치운다는 점에서 어느 히어로의 액션보다도 속 시원함을 안겨준다. 다 자란 클레이 모레츠의 더욱 호쾌한 액션이 돋보이는 2편의 힛걸도 멋지지만, 1편에서 그녀의 모습이 더 잊혀지지 않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 유명한 ‘복도 액션 씬’을 더욱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힛걸의 공격 개시와 함께 흐르는 유일무이한 여성 록커 조안 제트의 히트곡 ‘Bad Reputation’이다. “내 평판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 넌 과거에 살고 있지만 이제 새로운 시대야”라는 가사가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사람들이 ‘10대 초반의 어린 여자 아이’로부터 기대하는 연약함을 가볍게 무시하고 자기 갈 길을 가는 힛걸에게서, ‘여자에게 하드 록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세상의 편견에 굴하지 않았던 조안 제트의 모습도 언뜻 보인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절정에 삽입된 이 곡은 힛걸이라는 새로운 히어로의 주제가이면서, 부당함과 무력함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겠다는 이 영화 전체를 대변하는 곡이라 할 수 있다.


Joan Jett & The Blackhearts – Bad Reputation Live at 2014 Revolver Golden Gods 


영화제가 끝났다. 처음 사무국에 출근했던 6월, 나는 미루고 미뤘던 졸업 논문을 제출한 직후였고 앞으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무력감, 우울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처음 해보는 일들에 정신 없이 배우기 바빴던 두 달 반이 모두 지났고, 이제 일주일 후에는 학교 졸업과 함께 출근도 끝난다.

무작정 ‘영화가 좋고 음악이 좋으니 음악영화제에서 일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지원해 이렇게 한 번의 영화제를 함께 마무리하게 되었다.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는 의미 없는 수사는 붙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들 사이에 둘러 쌓여 일하는’ 재미에 대해 알아버린 이상, 녹록하지 않은 근무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 바닥’에 꼭 붙어 있고 싶어졌다. 내가 얼마만큼 훌륭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킥애스처럼, 힛걸처럼, 조안 제트처럼, “평판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즐겁게 살고 싶어졌다.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초짜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시고, 무력감과 우울함도 치유해주시고, 더불어 이 모든 즐거움과 추억까지 선사해주신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사무국, 그리고 함께 한 자원활동가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올해 영화제에서 나의 마지막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힛걸은 못되어도 킥애스 같은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BY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사무국 홍보팀 이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