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 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영화를 論하니노나니...]

오동진 평론가의 65회 칸 영화제 후기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화려하다는, 하지만 사실은 가장 젠 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칸 영화제에는 대개 밤 늦게 도착하게 된다. 에어 프랑스를 타고 가든 네덜란드 항공사인 KLM을 타고 스키폴 공항을 경유해서 가든, 아니면 독일의 루프트한자를 이용해 프랑크푸르트를 통해서 들어가든 거의가 밤 10시대에 떨어지는 시간 노선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칸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한다. 해변 휴양도시인 칸에는 공항이 없다. 거긴 7만의 작은 도시일 뿐이다. 칸으로 가는 첫 도착지는 니스다. 11시간 가까운 비행시간을 겪은 후 오밤중에 니스에 떨어지면 약간의 ‘멘붕’이 온다. 100유로가 넘는(한화 15만원 이상), 상당한 비용이 나올 것임을 알고 있지만 주저없이 택시를 타게 되는 건 그때문이다. 니스에서 칸까지, 택시로는 약 30분 정도가 걸린다.


 

칸은 전쟁이다


올해가 칸 방문이 처음인 사람이든 아니면 십여 차례에 가까운 사람이든 시차로 다소 혼미한 상태에서 맡게 되는 첫 아침은 누구에게나 당혹스러운 일이 된다. 일단 치러야 할 전쟁이 많다. 영화제 기간에 칸에 있으면 뭔가에 쫓기는 느낌을 준다. 이 휘황찬란한 영화제 한가운데에 놓이면, 영화 관계자든 아니든, 기자나 평론가이든 아니든, 그냥 놀고만 있으면 안된다는 강박이 생긴다. 무엇보다 영화를 봐야 한다는 긴장감에 하루하루가 날이 선다. 세계 거장들의 신작이 대거 몰린다는 영화제다. 영화제 전용관인 뤼미에르와 드뷔시 관 주변에 서서 보고 있으면 사람들의 발걸음은 늘 종종이다. 우루루 바쁘게들 뛰어 다닌다. 3천석의 위용에다 객석 각도가 거의 60도에 이르는 메인 상영관 뤼미에르에 앉아 있으면 이건 영화관람이 아니라 전쟁을 하러 왔다는 착각에 이르기까지 한다. 그래도 처음 칸을 간 사람은 웬지 가슴이 뿌듯하다. 자신이 전세계의 주요한 영화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그런 환상은 칸 방문이 두번이 되고 세번, 네번이 되면 점차 얇아짐을 느끼게 된다. 오히려 칸이 고집하는 영화적 순결과 순혈의 정신에 대해 약간은 삐닥한 시선을 갖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칸이 세계 영화계를 귀족과 서민의 계급으로 분할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영화제 첫날부터 꼭 획득해야 하는 것은 바로 ‘뱃지’다. 어느 나라든 국제 영화제에서라면 흔히들 볼 수 있는 출입카드인데 칸에서는 이 인식 목걸이가 대단히 중요한 존재다. 그건 나라는 사람이 칸 영화제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 맺어 왔는 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증명서 같은 역할을 한다. 프레스 카드, 게스트 카드, 페스티벌 뱃지 혹은 마켓 뱃지 등등은 모두 그걸 걸고 있는 사람이 영화제에 몇 번을 왔고 그럼으로써 그들 칸을 위해 뭘 했는지에 따라 다른 색깔을 지닌다. 그리고 그 컬러에 따라 받는 대우가 달라지는데 그런 구분 혹은 차별이 가장 엄격한 곳이 바로 칸 영화제다. 그래서 좀 치사하다는 느낌도 주지만 어쨌든 이 뱃지가 없으면 칸에서는 좀비가 된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내의 어떤 영화 관계자는 숙소를 니스에 두고 11일 동안 진행되는 칸 영화제에 매일 기차를 타고 출퇴근 하듯 다녔는데 어느 날 깜박하고 호텔에 뱃지를 놓고 오는 불상사를 겪었다. 그날 하루를 그는 말 그대로 시체처럼 지냈다.

 


칸은 영화제다


 칸 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의 편수는, 해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보통 1,800편 정도다. 이것만 보더라도 칸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필름 시장인지를 알 수 있다. 이중에서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작품은 1/30 정도다. 올해의 공식 후보작은 총 54편인데, ‘경쟁’ ‘비경쟁 장편’ ‘주목할 만한 시선’ ‘단편 경쟁’ 등의 부문으로 포진돼 있다. 영화 편수가 어마어마한 만큼 섹션의 구성도가 복잡하다. 전문가나 관계자가 아니라면 그걸 속속들이 알 필요는 없다. 다만, 경쟁부문에 어떤 영화들이 올라 왔는 지를 보면 그 해의 칸이 뭘 지향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영화제가 나눠주는 프로그램 카탈로그를 보고 있으면 피가 솟구친다. 꼭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영화를 오랫동안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걸 다 팽개치고 경쟁작에 매달리고 싶게 만든다. 그건 매해 똑같다. 개막작인 웨스 앤더슨의 <문라이즈 킹덤>을 비롯해서 요즘 프랑스에서 가장 ‘핫’한 감독이라는 자크 오디아르의 <러스트 앤 본>, 존 힐코우트의 <로우리스>를 놓치고 싶지 않아진다. 줄줄이 명명되는 감독들의 라인업은 사람을 약간 돌게 만든다. 그렇지 않겠는가. 크리스티앙 문쥬, 미카엘 하네케, 알랭 레네(도대체 언제 때 알랭 레네인가, <히로시마 내 사랑>이 몇 년도 영화였던가), 토마스 빈테베르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켄 로치, 월터 살레스, 레오 카락스, 데이빗 크로넨버그 등등 이들의 신작을 짧막하게 소개하는 글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분명 지금 딴 세상에 와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비경쟁 장편 부문에 들어 와 있는 공포영화의 대가 다리오 아르젠토나 이탈리아의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프라하의 봄>의 필립 카우프만은 또 어떤가.

 

그러나 한숨이 나온다. 경쟁작을 본다는 건 매우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벽처럼 일어나 티켓을 구해야 하는데, 그게 사실은 하늘의 별따기다. 영화표를 구하기 위해 하루 이틀 녹초가 돼다 보면 서서히 마음을 비우게 된다. 그리곤 자위하게 된다. 이들 영화들이 결국엔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 소개될 것이고, 어떤 건 수입이 돼서 일반상영도 될 것이라는 점을 굳게 믿으며 총총 발걸음을 떼게 된다.



 

7올해 영화제가 특이했던 건 할리우드형 장르 영화가 눈에 많이 띄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를 끈 작품은 호주 출신 앤드류 도미닉 감독의 <킬링 뎀 소프틀리>였다. 브래드 피트, 레이 리오타, 제임스 갠돌피니가 출연한 작품으로 일종의 갱스터 무비다. 한 ‘중견’ 마피아가 운영하는 도박장에 당돌한 절도범 두명이 돈을 털어간다. 마피아는 당근, 히트맨을 고용해 이들을 처단하는데, 그 과정이 점점 더 대형 살륙전으로 변해 간다는 얘기다. 앤드류 도미닉은 호주 활동시 절 거의 무명이었던 에릭 바나를 캐스팅해서 <쵸퍼>란, 매우 인상적인 데뷔작을 찍었다. 이후 2007년에 할리우드로 와서 브래드 피트를 만나서는 특이한 제목의 영화 <비겁한 로버트 포드가 제시 제임스를 살해했다>를 만들었다. 칸이 ‘요렇게’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영화를 공식 경쟁에 포함시켰다고?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킬링 뎀 소프틀리>같은 작품이 올 칸 영화제에는 유독 많았다. 니콜 키드만과 존 쿠색이 주연을 맡았던 <페이퍼 보이>란 작품도 범죄 스릴러다. 비경쟁 장편의 첫 머리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르3>가 장식했다. 이런 라인 업을 보고 어떤 평자는 ‘미국영화의 귀환’이라고 썼다. 근데 그건 좀 과장이다. 그보다는 칸을 맡은 지 몇 년 되지 않은 티에리 프리모 집행위원장의 ‘신선한 반란’ 쯤으로 보는 게 맞다. 그가 올해 특히 자기 색깔을 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킬링 뎀 소프틀리> 등의 영화를 대중영화로 보는 것도 좀 그렇다. 그건 이 영화에서 킬러인 브래드 피트가 하는 마지막 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게 왜 경쟁작으로 들어 왔구나,를 짐작하게 한다. 피트 왈, “어메리칸 이즈 낫 어 커뮤니티. 잇 이즈 저스트 퍼킹 비즈니스!” 미국 사회, 천민화 돼 버린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이 들어 있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사족처럼 덧붙이자면 홍상수, 임상수, 이른바 투 상수의 영화 <다른 나라에서>와 <돈의 맛>이 경쟁에 당당히 들어간 것도 약간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두 영화 모두 응당 작품성 때문에 칸에 입성했지만 티에리 프리모가 아시아권 감독들 중 ‘자신의 디렉터 군’을 구축하려는 의도가 아예 없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칸은 장사다


본래 영화제라는 것이 페스티벌을 위해 만들어진 잔치는 아니다. 생각해 보면 필름 마켓이 먼저였을 것이다. 누군가 영화를 만들고 좌판을 차려서 그 상품들을 팔려고 했다 치자. 그럴려면 그 시장에 모객을 해야 한다. 장사란 확성기에 대고 물건 사 가라고 떠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전면에 내세운 것이 영화제다. 영화제란 존재는 사실 장사를 위해 만들어진 셈이다.

 

2천편에 가까운 영화들 거의 모두는 공식 영화관인 뤼미에르와 드뷔시 주변, 곧 작고 허름하며 퀴퀴한 마켓 극장을 유령처럼 떠다닌다. ‘아카이드’나 ‘스타’ ‘올림피아’ 등등의 극장에 앉아 있으면 정말 이곳이 소도시고 거기에 걸맞는 장소라는 느낌을 준다. 이렇게 마켓 극장에서 만나는 영화들의 상당수는 조금 세게 얘기해서 ‘쓰레기’다. 10편 보면 한편 건질까 말까다. 관객들 대부분은 수입상들이거나 다른 해외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다. 이들이 온전히 러닝 타임 끝까지 앉아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3,40분 정도 영화를 휙 보고 나서는 살지 말지, 자기 나라로 들여 갈지 말지를 결정한다. 영화가 아무리 지겹고 후져도 지긋이 앉아 참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관객들이 후다닥 들어 왔다 나갔다 하는 광경을 보는 것은 진풍경이다. 한편에서는 턱시도와 이브닝 드레스를 차려 입고 카메라 플래쉬의 폭죽 속에서 거장들의 예술영화가 상영되는 와중에 또 한쪽의 어떤 영화들은 먹다 버린 햄버거나 샌드위치 취급을 받는다.

 

전용관 뒤에 대규모로 차려져 있는 마켓 부스들도 장관이다. 여기서는 아트를 논하지 않는다. 오로지 영화란 물건을 얼마에 사고 팔건지, 계산기를 앞에 놓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마켓 주변 식당에서 사람들이 입에 음식을 물고 시끌벅적 떠드는 것은 미카엘 하네케의 <아무르>가 황금종려상을 받을 것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이들의 관심사는 이병헌과 캐서린 제타 존스가 주연을 맡는다 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레드2>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누가, 얼마에 샀냐는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바이어는 어느 누군가가 턱없이 높은 가격에 영화를 샀다며, 시장을 교란시켰다며 씩씩댄다. 영화제 막바지에 한국 수입업자들 사이에서 이슈가 됐던 영화는 나오미 왓츠 주연의 <투 마더스>였다. 나오미 왓츠의 매력적인 외모와 연기력을 생각하면 이 영화는 당연히 서로 사려고 아우성을 칠 만한 작품이다. 그런데 내용이 문제가 됐다. 두 엄마가 상대의 아들들과 각자 사랑에 빠진다는 얘기라는 것이다. 수입상들마다 서로, 당신이 사라며 떠넘기는 모습은 코미디 같았지만 나름 진정성이 오고 간다. 이들에게 영화란 미학이 아니라 비즈니스다. 그런데 거기서 종종 삶의 체취가 묻어난다. 진국의 삶은 늘, 저자거리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칸이라는 도시는 영화제를 통해 살벌한 장사를 해댄다. 모든 물가가 평소 때와 다르게 두세배 비싸게 책정돼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상식이다. 영화제 때 칸에 갔다 하면 가능하면 입도 닫고 지갑도 닫아야 한다. 입을 많이 열면 배고프기 때문이다. 자칫 약간 들떠서 서너명이 모여 밥먹고 술먹으면 제꺼덕 200유로, 우리 돈 30만원을 쓰게 된다. 한국의 영리한 사람들은 그래서 가능하면 워킹 푸드들을 갖고 간다. 햇반과 사발면, 각종의 통조림들을 바리바리 싸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가진 한국 음식을 나눠주기도 하는데, 가끔 그게 재밌으면서도 눈물이 난다. 5성급 호텔은 하루 밤에 3천만원이다. 언감생심, 꿈도 꾸면 안된다. 보통사람들은 레지던스 호텔과 아파트를 잡는데 평소의 세 배 가격을 각오해야 한다. 칸 주민들은 영화제 때 아예 자신들의 집을 비우고 렌트를 준다. 만만찮은 수익을 얻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보다 약간 아래인 사람들은 그나마 칸에 머물지도 못한다. 가깝게는 앙티브, 멀게는 니스에 숙소를 잡는다. 예전에는 칸의 거리에서 초절정 스타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과거 얘기다. 지금은 이들 스타들이 마르티네즈나 칼튼 등등의 호텔에만 머문다. 호텔에서 의전차로 레드 카핏이 깔려 있는 전용관까지 에스코트 되는데 대개 철통 경호가 이루어진다. 대중들이 이 화려한 스타들을 볼 수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TV를 통해서다. 칸이 명실공히 전 세계 1위의 영화제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계급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칸은 관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칸의 매력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저런 수식어를 첨언할 필요없이 칸이라는 영화제의 도시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전용관을 마주하고 오른 쪽과 왼쪽은 각각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신시가지의 한 아파트에서 칸 해변을 내려다 보고 있으면 모두들 고단한 삶의 여정 속에서 하루 이틀 정도는 이런 시각적 사치를 누릴 권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든다. 이맘 때 칸의 바다는 보통 잔잔하다. 칸의 해변은 사람들 마음을 그렇게, 잔잔하게 만든다. 다른 건 다 비싸도 마트에 즐비하게 비치돼 있는 와인은 5유로에서 10유로급 정도로 비교적 ‘착해서’ 바다와 함께 레드 와인 몇 잔 마시면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것이며, 살아내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어쩌느니 저쩌느니 해도 영화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이며 영화와 함께 하는 삶은 착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구시가지, 흔히들 올드 빌리지라고 불리는 레스토랑 지역은 칸이 사실은 고도의 도시임을 새삼 자각케 한다. 친절한 웨이트리스의 도움을 받아 프렌치 음식을 먹으며 유유자적하는 맛과 멋이 괜찮은 동네다. 올드 빌리지는, 예상이 되겠지만, 밤이 더 예쁜 동네다.

 

올해 칸 영화제는 18년만의 이상 저온현상에 시달렸다. 보통 칸에 가면 거멓게 그을려서 돌아온다. 오로지 걸어 다녀야만 하는 동선의 특성 탓에 땀을 많이 흘리게 되고 그래서 살도 약간 빠진다. 다이어트에 최고다. 하지만 올해는 영화제 기간 2/3가 우중이었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그랬다. ‘칸이 춥다니!’ 유로존의 급격한 붕괴의 와중에서 최상의 영화축제란 허황된 명구일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 미학, 영화예술이 존재해야 삶의 혹독함을 견뎌낼 수 있다. 칸은, 꿋꿋이, 고집스럽게 그 점을 보여주는 영화제다. 칸영화제를 이렇게 사진과 화보로나마 권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