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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FF HOT/JIMFF`s Talk Talk

Oneal의 클래식 정복기 #7




책상 위의 데스크탑은 직사각형의 검은 빌딩 모습으로 검게 서 있었다. 그 빌딩 옆으로 힐끗 보이는 곳에 CD가 쌓여 있다. 호떡처럼, 쌓여 있는 호떡은 구운지 한참지나 축쳐져 맛을 잃어 보인다. 엉뚱하게 산 독일 CD, 그 밑에 직구로 구한 쇼팽 5, 호로비치, 그리고 몇 개, 몇 개.

 

숙제가 쌓이듯 CD가 쌓인다. 언제 다 듣지. 숙제만 하는 인생. 패배자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 못 하는 학생은 언제 숙제 하지 걱정만 하다 숙제도 못한다. 우등생은 숙제를 뚝딱 해 치우고 다음에 자기 공부를 한다. 틀린 문제의 오답 노트 만들기 (틀리는 문제가 거의 없으니 만들기 쉽겠지!), 집중 공략할 과목(두루 잘하니 딱히 집중 할 과목이 없겠지!), 시험에 반드시 나오는 출제 성향에 따른 선택적 공부(시험에 나오는 것뿐 아니라 나오는 것 까지도 대부분 파악이 됐겠지!), 다양한 방법론을 활용해 실력을 쌓아간다.

 

숙제는 실력과 전혀 상관 없다 하겠다.

열등생은 숙제도 못 한다.

 

숙제 정도는, 물론 공부도, 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자만 하지만 숙제 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숙제는 그냥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그러니 난 숙제를 내고 넌 숙제를 해라는 관계를 증명하기 위한신분체계 확인의 상징물일 뿐이다.

 

공부는 학생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 못하는 학생은언제나 숙제를 미룬다.

 

좀 있다, 좀 있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시간이 세월 되고, 세월이 가면, 어느 새 여기에 와 있다.

사무실 한 귀퉁이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아서 꾸부정하게, 뒤에서 보면 어디까지가 의자고 어디부터가 몸뚱이인지 구별 할 수 없는 물아 일체의 경지로,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달하는 그 곳에 서 있다. 그리고 마음 속에는 패배감이 밀려오고, 그 패배감을 감추기 위해 끝없는 원망들이 자신을 휘감는다.

 

"그 때 과외만 좀 더 해 줬으면 더 좋은 대학 갔을 텐데,

그 때 해외 유학 갔다 왔으면 학위 하나는 가지고 있을 텐데,

유학 못가면 해외 연수라도 갔더라면 외국어 하나는 거침없이 할 텐데,

돈이 한 1억만 있으면 창업이라도 해 보는 건데,

 

했으면, ….했으면.

못 하게 한 사람 없다, 못 하게 한 사람은 돌아보면 나 자신이었다.

환경과 여건이 아니고 내 자신이, 숙제 좀 있다 하지 좀 있다 하지, 하듯 이 핑계 저 핑계, 이래서 안하고 저래서 안하고, 누가 못하게 한 것은 아닌데 마음 소게 원망만 가득 한 나, 그래서 패배자.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패배자 2,

그런 상태에서 주변을 원망만 한다-패배자 1.

 

그렇다, 난 완성형 패배자 1급 자격증 보유자다.

 

늘 천재를 동경했다. 천재가 되고 싶었다.

"근데 재능이 약해서!" 타고난 재능이 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예술의 영역에서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16세 소녀가 음원 차트를 뒤흔들고 있다.

그녀가 음악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았을까?

받았다 해도 그게 얼마나 될까?

 

이제 16살이다.

그녀가 뜨자 그녀의 집안 내력이 인터넷을 달군다. 유명한 출판사의 손녀, 할아버지 덕에 부()를 타고 났듯 음악적 재능도 타고 난 것인지 그녀가 부유한 집의 손녀라는 것이 시기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은 타고난 부()보다는 타고난 재능을 더 시기 할 것인데, 둘 다 있으니 더 시기하고 싶겠다.

 

떠밀려 숙제를 한다. 더는 미룰 수 없다. 주문한 CD가 더 도착하기 전에.

!

CD플레이어는 아직도 없다.

호로비치를 듣는다.

실황 중계 앨범이다.

박수 소리가 먼저 들린다. 박수 소리 멈추고 잠깐의 퍼즈. 몇 개의 음이 흐른다. 감탄이 입에서 나온다.

 

"! 이래서 호로비치구나"

호로비치가 누군지 모른다. 영화 <호로비치를 위하여>라는 음악영화가 있었다. 엄정화가 나왔고 어린 소년과 피아노에 관한 영화.

호로비치가 피아니스트였구나.

 

'론다' 뭐지?

경쾌하다.

모차르트.

클래식은 모차르트냐, 베토벤이냐가 아니라 연주자가 누구냐가 결정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바흐, 굴렌골드. 모차르트, 호로비치.

 

정명훈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갔었다. 정명훈의 공연이라서 지휘하는 줄 알았는데, 피아노를 치신단다. 그 분이 피아니스트였다는 것을 공연에 가기를 결장하고 나서 알았다.

 

무식해, 역시 클래식은 공부가 필요해.

숙제도 겨우 했던 애들의 한계다, 도통 공부를 안한다.

 

그 공연에서도 모차르트를 들었다. 근데 좀 다르다.

호로비치의 연주는 눈이 아니라 귀로만 듣는데도 손가락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빠르고 가볍고 부드럽고 정확하게 건반을 오가는 그의 손들이 보인다. 긴 건반 위를 움직이는 팔이 두 개였다, 네개, 여덟개, 열여섯개, 다시 두 개로 늘었다, 줄었다, 가제트의 만능 팔처럼, 영화 <기생수>의 오른팔이처럼.

움직이는 팔의 동작들, 그 동작 사이에 수십개로 쪼개지는 세포처럼 손가락들이 수십개로 수백개로 끝없이 분열하고 있었다.

 

하나의 세포가 수억만개로 분열하여 성체가 되고 인간이되 듯 그의 팔 두개의 손가락 10개가 수만개로 분열하여 음률의 성체를, 음악의 형상을 완성하고 있는 모습이 환상처럼 머리에 그려졌다.

 

이 모든 피아노의 선율이 그의재능만으로 이루어 진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만들어낸 음들은 왠지 지독히도 반복하여, 반복, 반복, 하여 반복해서 만들어진 음들로 들렸다. 그가 천재가 아닌 것은 아닌데,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런데도 그 뒤에 무언가가 더 있는 것이, 재능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보인다.

 

16살 소녀는 노래를 좋아했겠지,

틈만 나면 혼자서라도 매일 노래했겠지.

좋아하고 매일하고, 좋아하고 매일하고.

 

몇 살 때부터 시작한지는 모르지만 피아노가 좋았겠지.

피아노 학원 간다고 말하고 중간에 오락실로 새진 않았겠지,

연습실에서 몇시간이나 훈련하고도 집에 와서 또 몇시간을 쳤겠지, 신나게 행복해 하며,

옆 집 아저씨가 "거 좀 잘 때는잡시다"라고 창문 너머로 소리 칠 때 까지는 쳐겠지, 즐겁게.

눈을 뜨면 세수도 하기전에 피아노부터 쳤겠지,

몇 번이고 엄마가 아침 먹으라고 불러도, 엄마가 피아노 부셔 버린다고 협박 할 때 까지는 아침도 안 먹고 쳤겠지,

 

그랬겠지.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노력을 안 했겠지,

그 때나 지금이나 숙제나 겨우 했겠지,

패배자 1급 자격증 소지자씨.

원망이나 하고.


박윤하 - 원하고 원망하죠 (원곡: 애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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