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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den Track] 자유를 향한 울음, <노예 12년>

올 초 오스카 작품상을 거머쥔 영화 <노예 12년>의 훌륭한 점에 대해서는 국내외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피해자’ 노예들의 고통과 함께 가해자들의 심리까지 무심하게 던지듯, 그러면서도 꼼꼼하게 묘사한 연출의 섬세함은, 의도대로 관객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휘저어 놓는데 성공했다. 주인공 솔로몬 노섭 역의 치웨텔 에지오포나 여우 조연상을 탄 루피타 뇽, 광기 어린 주인을 표현한 마이클 패스벤더 등 주조연 모두의 끔찍하리만치 훌륭했던 연기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소리’였다. 연출과 연기, 그리고 도저히 상을 주지 않을 수 없는 소재에 가려 존재감을 과시하지는 못했지만, 영화의 사운드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주인공 ‘솔로몬 노섭’의 심리를 대변한다.

과거 바이올리니스트로, 자유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꽤 대우 받는 위치에 있었던 솔로몬은 노예가 된 이후에도 동료 노예들에 섞이지 않으려는 듯 행동한다. 동료 노예들의 노래나 원초적이었던 원주민들의 리듬에도 다소 냉담하게 행동한다. 다만 그가 듣는 그 소리들은, 영화가 중첩시켜 들려주듯 솔로몬의 머리 속을 맴돈다. 일하면서 다른 노예들이 부르는 노동요와 못된 백인 감독관의 조롱 섞인 노랫말, 기만적인 주일 설교와 아이들을 그리는 엘리자의 울음 소리 등. 의도적으로 겹쳐져 있는 그 소리들은,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상황에도 ‘지고 싶지 않은’ 솔로몬의 머릿속을 열어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동료가 죽은 후 노예들이 그를 추모하며 모여 부르던 노래 ‘Roll Jordan Roll’을, 입 꾹 닫고 듣기만 하던 솔로몬이 따라 부르기 시작하는 그 순간이 더욱 극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극중에서 그는 바이올린 실력으로 꽤 좋은 대우를 받곤 했지만, 자유인 시절에나 노예가 된 이후에나 그의 연주는 ‘그의 소리’라기보단 타인, 특히 백인들을 위한 ‘배경 음악’에 불과했다. 그것은 백인 주인들의 ‘명령’에 따라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발랄한 멜로디를 연주해야만 했던 몇몇 장면들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음악의 가장 원초적이고도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내면의 표현이라면 그의 바이올린 연주는 그 속이 텅 빈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바이올리니스트’ 솔로몬 노섭의 마음이 표현된 음악은 영화 속 몇 번 연주되었던 예쁜 선율의 바이올린 연주가 아니라 단조로운 멜로디와 가사의 추모가(歌) ‘Roll Jordan Roll’이었던 것이다. 노예가 되기 이전의 품위 있고 행복했던, 그러나 그의 ‘인종적’ 위치에 대한 자각은 없었던 과거 삶, 그리고 노예가 된 이후에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솔로몬의 자존심이자 의지를 상징하던 ‘바이올린’은, 결국 모든 희망이 꺾인 후 솔로몬 자신의 손에 의해 부서진다.


Roll Jordan Roll (흘러라 요단강아 흘러라) – 탑시 채프먼 (feat. 치웨텔 에지오포 외 출연진)

과거 노예의 주인들은 노예들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노예들에게 종교, 즉 자신들이 믿던 기독교를 믿게 하였다. 노예들이 살던 아프리카의 전통이나 사상을 뿌리 뽑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종교의 논리를 이용하여 순종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는 영화 <노예 12년>에도 주인 포드의 일요 예배 모습이나, 엡스가 성경 구절을 왜곡되게 인용하여 노예들을 협박하는 장면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미국의 흑인들 중에는 기독교 신자가 상당히 많다. 당시 노예들이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부르던 흑인 영가들은 ‘Amazing Grace’, ‘You raise me up’ 등 지금까지도 널리 불리고 있으며, 현대에 ‘블루스’라는 음악 장르가 탄생하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노래 ‘Roll Jordan Roll’ 역시 실제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미국의 노예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알려졌던 노래 중 하나다.

‘Jordan’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강 ‘요단강’을 말하는데, 기독교 성서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이들에게 세례를 베푼 강이면서 그 외의 중요한 사건들에도 자주 등장하는 강이다. 특히 선지자 엘리야가 ‘요단 강을 건너 하늘로 올려졌다’는 구절이 있어서 천국으로 갈 때 건너게 되는 강으로 여겨지는데, 이 때문에 많은 찬송가에서 요르단 강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19세기 미국의 노예들에게 요단강은 천국으로 향하는 관문이면서 끔찍한 노예 생활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기도 했다. 남부에는 노예제가 존속 중이고 북부에서는 사라진 당시의 상황에서, 이 노래 속 ‘요단강을 건너고 싶다’는 말은 북부로 가 자유를 되찾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니 극중 혹사 끝에 죽은 동료를 추모하며 솔로몬과 다른 흑인들이 부른 이 노래에는, 천국에서만이라도 그가 자유롭기를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그처럼 노예로 살다 죽고 싶지 않다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Roll Jordan Roll - John Legend

영화 본편에서는 들을 수 없지만, 발매된 사운드트랙에는 미국의 R&B 슈퍼 스타 존 레전드가 부른 ‘Roll Jordan Roll’ 역시 수록되어 있다. 19세기의 흑인 노예들에게는 이 노래가 민요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다른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고 하며 그래서 이 버전은 영화 속에서 출연진들이 부르던 그것과는 가사도 멜로디도 다르다. 노래 자체의 느낌도 그 안에 담긴 정신도, 일제시대 수난을 겪으며 전 국민의 노래가 된 우리의 ‘아리랑’과도 비슷하다. 고난의 시간이 위대함을 낳는 것은 어디서나 통용되는 진리인 듯하다. 다만, 그 고난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현실의 문제들은 미국에서도, 이 땅에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노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지난 아카데미가 많은 명작들 중에서 <노예 12년>의 손을 들어줬던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며, 더불어 우리가 이 영화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BY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사무국 홍보팀 이인재